긴 여행의 목표
2021. 12. 11. 14:02ㆍ연두네
"맞소, 바로 그 사람! 슐리만, 그게 그 사람 이름이었고. 선생은 그가 발굴한 것이 트로이라고 믿으시오? 하신, 그건 분명 트로이였지. 그러면 그게 왜 트로이였겠소? 왜냐 하면 그가 그것을 거기에서 찾았으니까. 마치 사냥꾼들이 사슴을 잡듯이... 그래서 그곳이 트로이였던 거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소?"
"잘 모르겠습니다."
시릴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 어르신은 그 이전에는 그곳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씀하고 싶은 건가요?"
노인은 다시 한번 큰 머리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고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왜 이해를 못하지? 그가 그것을 찾았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그곳에 있었던 거란 말이오."
- 자유의 감옥, 미하엘 엔데, 86~87쪽, 긴 여행의 목표
김춘수 시인의 <꽃>과 비슷한 인상의 구절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주인공 시릴은 '집이 그리운 까닭'을 '대체' 모른 채 살아가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이상향을 향해 긴 여행을 떠난다.
한편 나는 무엇을 위해 떠나는가. 어쩌면 내가 찾는 것은 이미 내게 와 있는 것일 수도.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거리를 두고 ㅡ 2차원 평면에 놓인 나를 좀더 높은 곳에서 들여다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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