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라, 어른의 일기

2022. 11. 4. 11:55아빠랑

일기를 줄곧 써왔다. 예전에는 노트나 3년 일기에 몇 줄 적었지만, 지금은 휴대폰에 다이어리 앱을 구매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더 정성을 들여 나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나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글자 수도 현격하게 늘었다. 

 

다음은 책에 포스트잇을 붙인 문장들. 

 

 

저는 언제부턴가 '이거 나에게 해도 되는 일인지 아닌지'의 기준을 거희 딸아이로 삼고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내 아이, 그런 딸에게 하지 못하는 말이나 시킬 수 없는 일들은 나에게도 하지 말자는 주의입니다. 예를 들어, 식구들이 남긴 밥을 싱크대 앞에서 전부 입에 털어 넣는 일. 예전엔 종종 있던 일이지만 어느 날 '내 딸이 내 나이에 이러고 있다면? 내 딸에게 이렇게 하라고 할 수 있겠어?'라는 질문 앞에 목구멍이 콱 막혔어요. 절대로 그렇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 엄마에게는 나도 참 예쁘고 귀한 딸일 테니까요. 

 


생각으로는 생각을 교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은 너무나 빨리, 자주 변하고, 또 너무나 교묘히 덩치를 부풀리거나 모습을 감추기 때문이죠.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기록, 더 정확히는 기록을 통해 다시 제대로 나를 들여다보는 것뿐이었어요.


지구 반대편 억만장자 외동딸의 삶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잖아요. 야망을 가지고 성취를 이루고, 비현실적인 외모와 몸매를 가진 사람들의 성공에 좋든 싫든 매일같이 노출되는 시대를 살며 건강한 자존감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하철 1시간 타고 출근하는 길에 전용기 타고 프라이빗 섬에서 생일파티하는 할리우드 모델의 하루를 지켜보는 게 뭐 그리 유쾌하겠어요. 상사한테 똥멍청이 소리 듣고 퇴근하는 길에 창업 3년 만에 매출 100억 찍은 20개의 파이팅 넘치는 인터뷰를 보는 게 자존감에 도움이 될 리도 없고요. 이렇게 적고 보니 꽤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순도 100% 현실이지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자족하고 살 수 있을까요? 몇십 억짜리 한강뷰 아파트에 홀로 사는 20대 연예인들의 모습을 TV로 지켜보며 12평짜리 자취방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명품으로 휘어 감고 쇼핑을 즐기는 인스타 속 인플루언서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돈 몇 푼' 벌고자 출근하는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백번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매일의 작은 성공을 기록하고 칭찬하며 '내가 해난 일들'에 집중합니다. 굳이 내가 이루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일에 에너지를 내어주며 절망하기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해낸 일들을 확인하고 자존감을 높여가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의외로 엄청납니다. 단순히 자존감만 높아지는 게 아니라 용기, 자신감, 만족이 덩달아 올라가고 왜곡되었던 자아상이 활짝 펴져요. 남들의 '하이라이트'에서 시선을 떼고 오늘 일어난 나만의 성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 성공일기란 내 기를 살려주는 최고의 치어리더인 셈이에요.

 

 

지금 우리는 24시간 연결되었으나 정작 자기 자신과의 접촉이 끊어진 시대를 살면서 끝이 안 보이는 새로운 정보와 기술에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와 온라인에서 접속되어 과도하게 의지하고 넘칠 만큼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조용한 삶이란 거의 불가능하며 일상의 구석구석, 기술이 스며들지 않은 부분을 찾기도 어려워요. 이런 시대의 일기 쓰기는 그래서 더욱 특별해요. 단 몇 분만이라도 고요하게 홀로 앉아 내 삶에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왜 원하는지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동안 할머니에게 전해 듣고 곁에서 지켜보며 취합한 정보로는, 노년에는 무엇보다도 이런 게 필요하겠더라고요. 
 1. 가끔 가족들이 모였을 때 손주들에게 비싼 장난감을 사줄 수 있을 정도의 통장 잔고 
 2. 공짜 지하철을 넉넉히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과 건강
 3. 죽는 소리 안하고 만날 때마다 빵빵 터지는 친구 한두 명
 4. 혼자서도 밥 잘 차려 먹는 배우자
 5. 하루 4~5시간 내외로 할 수 있는, 서글프지 않은 소소한 일거리
 6.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취미활동


꿈 많은 당신이 일기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꿈으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 도저히 닿을 수 없다고 느꺄질 때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걷고 있는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요.

 

상처 많은 당신이 일기를 썼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치유할 힘은 내 안에 있으며, 마음을 들여다 볼 용기를 낸다면 다음 페이지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질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도록이요. 

 

 

 

일기장이라는 작은 공간은 나의 우주, 나만의 소행성.

저는 그 안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며 안전하고 자유롭게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어요.

 

- 어른의 일기, 김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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