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4. 28. 23:04ㆍ아빠랑
갈 길 바쁜 출근길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미용실 앞에 서 있었다. 문에는 그다지 작지 않은 팻말이 붙어 있었고, 할머니는 그것을 한참동안 쳐다봤던 모양이다. 스쳐 지나가던 나를 할머니가 불러 세웠다. 희끗하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힘있게 뻗어 있었다.
"저기, 오늘 미용실 안 한다는 거여?"
뭘 보고 그리 말씀하실까 싶어 가게로 가까이 가 팻말을 들여다 봤다.
<잠시 외출중입니다. 010-oooo-xxxx>
"아니에요. 영업은 할 겁니다."
늘 지나던 길이라 사장님이 9시 이전에 가게 문을 연다는 걸 알고 있던 터라, 그리 대답했다. 가볍게 대답을 하고 몸을 돌려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뒷통수에 할머니의 외침이 박혔다.
"전화 좀 해봐. 오늘 문 여는 건지 물어봐봐여. 노인네가 붙잡아서 미안혀."
마지못해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오늘 영업 하시죠? 여기 어르신이 가게 앞에서 기다리고 계신데 언제쯤 여는지 궁금해하셔요."
미용실 사장님은 출근 중이었고 10분 뒤면 도착한다고, 할머니께 전해 드렸다. 그리고 할머니가 또다른 부탁을 하기 전에 서둘러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
.
.
.
사무실에 도착하여 한두 시간쯤 일을 봤을 때 문자가 왔다. 문자를 받고 얼굴이 잠시 화끈거렸다.
그때 사실, 솔직히 귀찮았기 때문이다. 부탁하는 태도도 노인네 특유의 무례함이 묻어나 선뜻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아마 할머니가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 도와주려면 기꺼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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