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2021. 4. 16. 00:08아빠랑

 

금요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돌아왔어야 할 금요일.

 

7년이 지났다. 아이들의 꿈이 실현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7년이 지났다. 대통령의 7시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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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는 요리사를 한다고 했어요. 제가 “너는 요리에 소질도 없는데 왜 하려고 해. 힘들어. 하지 마” 그러면 “엄마 아플 때 죽이라도 끓이면 좋잖아. 아빠는 못하는데 나라도 하면 안 좋아?” 언젠가 제가 아플 때 건우 아빠가 죽을 사갖고 왔어요. 죽집 죽도 아니고 구멍가게에서 파는 공산품 죽, 진짜 맛이 없어요. 또 죽이 싫어 미역국을 먹는다 하면 즉석미역국 이런 걸 사다줘요. 그러니까 건우가 그걸 보고는 “나는 커서 마누라가 아프면 죽도 해주고 미역국도 해주고, 엄마가 아파도 해줄 거야” 하면서 요리사가 꿈이라고 했어요. 얘는 사실 꿈이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요리사는 덩달아 꾼 꿈이지요. 아빠처럼 아내 사랑, 자식 사랑 하고 살고 싶다고. 제가 “너는 아빠만큼만 살면 성공한 거야”라고 하면 “그런데 나는 아빠보다 쪼금 더 잘살 거야. 돈도 좀 더 벌고. 차도 좋은 거 사고, 그래서 엄마 아빠랑 같이 휴가도 가고 그럴 거야” 그랬어요.

 

- 2학년 4반 김건우 학생의 어머니 노선자 씨 이야기 중

 


소연이는 아빠가 힘들게 일허는지 아니께 열심히 공부를 했시유. 중학교 교사 되어서 아버지 나중에 힘들지 않게 하겠다고 밤늦게꺼정 공부를 하곤 했시유. 생각허는 게 어른이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공부를 잘혀서 장학금을 받았시유. 졸업식 날, 그 돈으로 졸업식에 온 내 친구들을 대접혀주었구만유. “소연아, 손님들 와서 밥을 대접혀야 되는디 뭐 먹을겨” 그렸더니 “아빠 공돈 나왔으니 나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가자” 그려서 따라가보니 삼겹살집이더라구요. 자기도 좋아허지만 어른들이 좋아허는 거 아니께 그렇게 배려를 헌 거죠. 거기서 17만원 나았는듸 그걸 장학금으로 계산허더라고유.

 

- 2학년 3반 김소연 학생의 아버지 김진철 씨 이야기 중

 


우리 아이는 너무 평범하고 다른 애들처럼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누가 뭐 하자고 하면 “아니야, 아니야” 그랬어요. 호성이에 대해서 특별하게 이야기한 게 없어요. 그런데 애가 국어선생님이 꿈이었으니까 TV나 기사에 나오는 것보다, 책에 한 장이라도 남으면 애가 좋아하겠다 싶어서 인터뷰하겠다고 한 거예요.
내가 “호성이는 뭐하고 싶어?” 했더니 자긴 책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국어선생님 하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나는 호성이한테 사회복지과를 가라고 했었지요. 내가 보기엔 그런 게 딱 맞는 애예요. 사람하고 앉아서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고 오지랖이 넓어서 남 도와주는 거 좋아하고. 동네 공부방에 다녔는데 거기 선생님에게 상담도 해줬대요. “선생님도 힘드시죠?” 하면서.
호성이 동네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 아빠가 아이를 좀 억압했나봐요. 애를 ‘꼼짝 말아라’ 하는 식으로 다루는 거죠. 어떤 때는 신발도 못 신고 쫓겨났대요. 그 친구는 우리 호성이를 좋아했는데, 걔 아빠는 호성이를 싫어했대요. 걔가 ‘내 친구 호성이가 아빠 보고 이상하다고 그랬다’고 한 모양이에요. 한번은 그 애가 또 쫓겨나서 우리 애를 찾아왔는데 그날따라 호성이가 전화를 못 받았나봐요. 우리 빌라 지하에서 밤을 새우고 갔대요. 그 아이가 호성이 장례식 때 한없이 엉엉 울다 갔어요.

 

- 2학년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 씨 이야기 중

 


애가 스튜어디스 된다고 작심을 한 지 한달도 채 안 되었을 거예요. 처음으로 우리 지성이가 “아빠, 나 공부 좀 해야겠어”, 제 스스로 그러더라고요. 얼마나 기특해요. “아빠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공부시켜줄 테니까 열심히 해” 그랬어요. 지성이가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선부동에 있는 학원을 다녔어요. 제가 두어번 정도 실어다준 적이 있었는데 “아빠, 저기야” 그래서 봤더니 아파트에 있는 학원이더라고요. 15명 정도 하는 스터디그룹 같은 거.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 가버렸어요.

 

- 2학년 1반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택 씨 이야기 중

 


우리 세희는 1학년 때부터 조향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향수 만드는 사람요. 올 봄에 벚꽃이 활짝 필 때였는데 서울대에 가서 강연을 듣고 와서는 세희가 진짜 확실히 잡았다고. 조향사가 되고 싶다고 그랬지. 그래서 옛날 어른들 하는 말대로 달러 빚이라도 내서 뒷바라지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게 할 테니까 말만 하라고. 세희가 서울대에서 벚꽃 배경으로 사진 찍은 게 있다고 그랬는데 안 보여줘서 못 봤었지. 보고 싶었는데 못 봤어요. 핸드폰이 올라오면 세희 친구들하고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어떤 벚꽃 아래서 찍었느지. 그런 게 보고 싶었는데... 핸드폰은 아직 안 나왔어요.

 

- 2학년 9반 임세희 학생의 아버지 임종호 씨 이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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