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

2022. 1. 21. 20:32아빠랑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빚지고 살아가고 있다

 

- 있지만 없는 아이들, 은유, 231쪽 

 

 

지난 11일, 광주에서 건축 중인 아파트가 무너졌다. 39층 짜리인데 38층부터 23층까지 와르르 붕괴됐다.

채 양생이 끝나기 전에 콘크리트를 타설해서 하중이 실렸을 것이다. 콘크리트 품질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동바리(비계 기둥)를 설치하지 않았다, 설계를 중간에 변경해서 문제가 됐다는 보도도 흘러 나오고 있다.

여러 단체와 사람들의 노력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이제 겨우 시행(2022.1.27.)될 예정이지만, 책임 소재를 원청에까지 올려 따져 물을 수 있을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실종자 6명 중 5명은 현장에 매몰되어 구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보도에서는 현장에 투입된 이주노동자를 탓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는데 당치도 않다. 책임의 화살을 애먼 그들에게 돌리지 마라.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 

 


이주노동자에게도 가족이 있을 터. 하지만 그 중에는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엄연히 이 땅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존재임에도. 그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거나 자랐을 뿐인데, 아이들은 어쩌다 그림자가 되었나. 국가는 미등록 이주아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2002년 한국 태생. 한국에 머물던 언어·청각장애를 가진 몽골 국적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고, 2020년 5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법무부에 M의 강제퇴거 중단을 권고했다. 


1999년 한국 태생. 한국에 머물던 나이지리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9년간 합법적으로 살았다. 2008년 아버지가 나이지리아로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면서 가족의 체류자격이 상실됐다. 2017년 불법체류·취업 중 적발되어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으나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고, 2018년 6월 체류자격을 얻었다.

K
2003년 이란 태생.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2010년 한국에 입국했다. 한국에 살며 천주교로 개종해 2016년 종교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 신청을 했으나 2018년 5월 불인정 처분되며 출국명령이 내려졌다. 학교 친구들을 중심으로 난민 인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낸 결과 2018년 10월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1999년 우즈베키스탄 태생.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우즈베키스탄 출신 부모를 따라 2003년 한국에 왔다. 당시 C 네살, D 두살. 셋째와 넷째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사남매가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모두 국어와 역사를 좋아한다. 이슬람교도다.


2001년 우즈베키스탄 태생. 부모님, 오빠와 함께 2003년 한국에 왔다. 

I
1962년 몽골 태생. 1996년 이혼 후 생계를 위해 다섯살 난 아들 H(1992년생)를 데리고 한국에 들어왔다. 정규교육 과정을 마치고 미등록 장기체류 청년 노동자가 된 H는 2020년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방침에 따라 자진출국 뒤 재입국 심사 기회를 가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항공편 결항으로 출국 유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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