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비, 4월 26일

2022. 4. 24. 14:29아빠랑

단비 

지금도 생각해요 
엄마랑 나란히 누워 속닥거리던 밤들
우리집, 내 방, 홀로 아빠는 잘 주무시고 계실까
내일 먹을 급식, 지현이 뒤척이는 소리, 
누가 틀어놓은 음악일까
희미한 듯 케이윌과 휘성의 노래
어느덧 창문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 
내가 없는 빈자리
그 자리를 둘러싸고 앉아 있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저는 잘 있어요
물이 오른 4월, 연둣빛 나무 벤치에서 
친구들과 깔깔거리는 중이지만
작은 잎이 웅덩이에 떨어지면 
문득 거기 돌아앉은 아빠의 야윈 등
아빠, 나 때문에 아프구나
내가 난생처음 말도 없이 나갔다가 돌아온 다음날
회초리 대신 갈빗집으로 외식을 나갔던 날
아빠의 담담한 손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잖아
그게 우리 아빠
자주 볼 수 없어서 늘 보고 싶었던 우리 아빠
아빠가 가자는 곳은 어디든 같이 가고 싶었어
내가 떠나오기 전
선글라스를 사주지 못했던 게 기억나
스파게티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이제는 등 돌린 채 술잔을 드는 아빠
그런 아빠의 등을 안고 있는 내가 느껴져요?
아빠가 토해내지 못한 
꾹꾹 참는 그 울음소리가 
내 심장을 울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여긴 4월의 빛나는 숲속이에요
햇살이 투명하게 부서지고
발밑에 뒹구는 열매를 먹어서
배도 고프지 않아요
그렇지만 
친구들이 팔짱을 껴올 때마다 떠오르는 
엄마
엄마가 마트에 갈 때마다
왼편에는 늘 내가 있었잖아
그 자리에 내가 없어서
문득문득 걸음을 멈춰 서는 엄마
내가 여행 가던 날
묵은 먼지를 털어낸다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옷도 빨았다가 그만
내가 영영 지워졌다고 
소리도 못 내고 고개를 숙였던 엄마
하지만 걱정 말아요
나는 4월의 빛나는 숲에 있지만
늘 엄마 곁에 있어서
이렇게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어요
엄마의 머리칼, 향기, 보드라운 팔의 감촉
비밀을 나눴던 엄마와 나의 밤들
사람들아, 기나긴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웃어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잊지 않을 거야 
여기 친구들이랑 모아둔 웃음소리를 우리집에 보낼게요
엄마가 그 속에서
물건을 사고, 길을 걷고, 뜨개질을 하고 
양치질을 하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거울을 보고
다시 화장을 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주말에는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책을 읽고
우리 식구 다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보기를 
그러면 나는 가족들 몰래
그 자리에 찾아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줄게요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봅니다
입술을 모을 때마다 새들이 날아올 것 같아요
그 속에는 나의 동생 지현이도 있어서
깃털을 쓰다듬어주고 있어요
늘 언니가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아서
서운했지?
이젠 내가 사랑을 돌려줄게
언니는 응급구조사가 되어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가 없게 되었지만
네가 힘들 때, 
그럴 때는 내 이름을 불러주겠지?
그러면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제인 먼저 너한테로 달려가서
이렇게 푸른 나무랑 곧 피어날 꽃들이랑 
환하게 꺼내어 너에게 보여줄게 
세상에서 제일 큰 4월의 꽃다발을 너에게 줄게
네가 둥실 떠오르도록
너에게 내 사랑을 보여줄게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

이상하죠
안경을 벗었는데도
모든 게 너무 잘 보여요
이젠 무섭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요
숲이 무성해지고 
공기가 따뜻해지면 
그러다가 문득 단비가 내리면
제가 잘 있는 거라고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거라고 
기억해주세요
하늘은 곧 
맑게 개일 거랍니다

- 그리운 목소리로 단비가 말하고, 시인 박상수가 받아 적다.

엄마, 나야. 중에서

 

 

4월 26일, 응급구조사가 되어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이단비를 기억하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