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학이 우리 사회에 제기하는 세 가지 도전

2022. 11. 18. 11:47아빠랑

 

장애학의 도전 

 

 

1) 장애 문제는 보건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 문제는 보건복지부 소관이에요. 과연 그러한가? 묻자.

 

이동권 보장을 외치러 국토교통부에 가면 왜? 라는 반응. 

이동 편의를 증진시키자는 주장은 보편적, 그럼에도 그들만의 문제로 치환, 치부하여 본질을 흐리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다수, 소수에 따른 권력의 문제다.

 


2) 장애인이어서 차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장애와 장애인) ①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ㆍ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장애인의 정의를 보면 어떤 '손상' 때문에 기능을 못한다는 것, 맞는지 되묻자. 

 

흑인도 차별 받을 때에는 장애인이 된다.

흑인에게 당신이 노예인 까닭은 피부가 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나.

 

"흑인(손상)은 흑인(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흑인(손상)은 노예(장애)가 된다."

 

여성도 맥락이 같다. 
'손상 때문'이 아니다.  

 


3) 자립은 의존의 반대말이 아니다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다. 

장애인이 너무 의존하는 게 아니라 의존할 게 부족하기 때문에 자립이 어려운 것이다."  

 

'장애'라 함은 신체적ㆍ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사회적 태도나 문화적, 물리적 장벽으로 인하여"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바꿔야겠다. 

 


남은 질문. 

 

결국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얘긴데, 어떤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왜 이리 인색하고 혹은 잔인한가?

장애인은 배려해야지 인식하면서도 정작 이동권 투쟁을 바라보는 시각은 싸늘하다.

몇 년 전 강서구에서 장애아를 둔 부모가 무릎 꿇고 학교 세워달라고 빌었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한데,

대체 이 간극은 왜 줄어들지 않을까?

사업장마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라고 법적으로 되어 있고, 학교에서도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법정 교육이 취지에 부합하게 목적을 향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나?

목적 달성을 위한 평가가 조사된 객관적 자료나 지표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거기서 제기되는 개선방향 등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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