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13. 00:14ㆍ아빠랑
프롤로그 "엄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나요?"
1장 도시 육아의 쓴맛
2장 불편함의 미학
3장 시골 학교의 가르침
4장 자연의 가르침
5장 엄마의 리틀 포레스트
에필로그 "꿀벌처럼 개미처럼, 나비처럼 살려고 여기 왔지"
답을 구하기 위해 때로는, 환경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그저 나 자신이 놓인 풍경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다는 경험.
비록 그것이 정답은 아닐지언정,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 풍경 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법을 익힌다.
어쩌면, 우리도 그 무리에 가까울지 몰라.
조금씩 다가가볼까?
관점이 바뀌면, 시선이 달라지면, 혹은 그에 맞춰 적응하다보면..
그토록 바라던 평화! 평화를 찾을 수 있을지도.
다음은 덕지덕지 붙인 포스트잇 자국들.
상주에서 나는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들 때마다 오솔길을 걸었다.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가 내가 걷는 속도만큼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살면서 그것들의 이름을 궁금해하거나 외워본 적이 없다. 이름 없는 것들의 무더기에 눈길을 준 적은 있을지라도, 그 정체를 알아볼 만큼의 여유는 없었다. 도시에서는 나무 이름 하나보다 배우고 알아야 할 게 더 많았다.
그런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했다. 더 노력해야만 인정받을 것 같았고 더 소유해야만 노력이 보상받는 것 같았다. 그너라 성과, 경력, 재산, 육아 어떤 면에서든 나는 흔한 풀 무더기보다 시선을 끌지 못한 개인으로 오래 살았다. 딱히 뭔가를 해내지도 못했으면서 번번이 지쳤다. 그리고 그때마다 노력이 부족했다며 자책했다. 나는 왜 이리 약해빠졌나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도시에서는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나무와 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라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았을 텐데 나는 기어이 자연을 만나러 시골로 왔다. 운명처럼 우리는 조우했다. 아이들 곁에서 나도 무해하게 한없이 자라났다.
- 김선연, 시골 육아, 6쪽
하지만 이미 방문학습 1년을 계약하면서 할인 혜택을 받았기에 환불도, 수업 중단도 불가했다. 이미 들인 돈도 아깝고, 어떻게든 아이가 약속된 만큼은 해내길 바라는 마음과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에 결국 수업을 중단하지 못했다.
선생님과 아이는 남은 10개월을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채워나갔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도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지금부터 이러면 아이가 영원히 이런 태도로 공부를 멀리 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아이의 성향을 살피지 못하고 타인의 말을 맹신한 내 탓인데도, 아이에게 열심히 하지 않는다며 혼냈다. 아이는 그 후로 어떤 놀이건 학습적 요소만 들어가면 완강히 등을 돌리고 앉아 거부했다.
- 김선연, 시골 육아, 26~27쪽
그런데 나는 지금이 중요한 성장기라는 이유로 주위에서 하는 것은 너도 다 해야 하고, 그게 성공을 위한 마땅한 준비라며 강요했다. 그 강요에는 지금 이것도 못 해내면 앞으로 계속 뒤처지다가 결국에는 인정받지 못하는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나의 불안이 숨어 있었다.
- 김선연, 시골 육아, 28쪽
시골집의 불편함은 아이들에게도 뜻밖의 선물을 주었다. 그동안 집을 짓고 고치는 일은 전문가의 영역이라 생각해 나는 무조건 업체 전문가를 찾아 하자 보수를 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아이들이 집에 낙서를 하거나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손을 대면 집이 망가진다고 혼내는 삶을 살았었다.
그런데 여기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대로 집을 고치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 시골집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놀이처럼 불편한 집을 보수하고 고쳐나가며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 김선연, 시골 육아, 64쪽
신기한 일이다. 모든 게 갖춰진 도시에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대부분 갖춰지지 않은 시골에서는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처럼 마음이 여유로웠다. 불필요한 소비가 줄어든 자리에서 우리는 '반드시 필요한 것'에 대하여 오래 생각할 수 있었다.
- 김선연, 시골 육아, 72쪽
삶에 지친 사람들은 타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친절과 배려를 기울일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속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행여 타인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자주 위축되고 외로웠다.
- 김선연, 시골 육아, 112쪽
이곳에서는 날씨를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나보다 날씨에 빨리 적응했다. 폭염과 한파에도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 놀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 주어진 환경에 온 힘을 다해 적응하며 즐겼다.
극한의 날씨 속에도 바깥놀이는 무궁무진했다. 또 그런 날씨에만 할 수 있는 놀이가 아이들을 바깥으로 불러냈다. 더운 날에는 집 앞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며 가재와 두꺼비, 물고기 잡기에 열 올렸으며, 추운 날에는 고드름, 하얀 눈, 냇가 위를 덮은 얼음이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여름날, 물장난을 치다 물이라도 먹으면 오만상 찡그리고 울기도 했지만 코를 힝 한 번 풀고 다시 물로 뛰어들었다. 겨울날, 꽝꽝 얼어붙은 냇가 얼음 위를 내달리면서 몇 번을 넘어져도 아이든 웃으며 일어나 또 내달렸다.
더위의 불쾌함과 추위의 냉혹함을 이겨내는 저력은 짜증이 나도 즐거운 놀이로 전환하는 지혜와 그때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입하는 태도에서 나왔다.
- 김선연, 시골 육아, 129~130쪽
아이가 그렇듯, 나 역시 더 이상 "안 돼"라는 말 뒤에 숨지 않기로 결심했다. "안 돼"는 우리가 다치고 상처받고 실패할 가능성을 막아줄 수 있지만, 동시에 경험하고, 터득하고, 성공할 기회도 빼앗는다. "안 돼"라는 방패에서 발 내밀고 나오는 순간, 수동적으로 나에게 붙인 정체성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리고 온전히 나답게 새살을 붙여나갈 수 있다.
그렇게 나를 채우고 나면 아이에게도 너그러워진다. 아이들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 사실을 인식하면,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긍정의 말들을 다정히 건넬 수 있어진다.
내 생각에는 불필요하고 시간 낭비일 것 같은 일들을 아이들이 해봐도 되냐고 물을 때, 머릿속으로 효율과 가성비를 따지려드는 본능적인 스위치를 꾹 꺼버린다. 방황해도, 올바른 답을 내지 않아도 되니 자유롭게 해보라고 격려하자고 다짐하며 대답한다.
"그럼, 너는 도전해봐도 되지. 해낼 수도 있고, 못 해낼 수도 있지. 그렇지만 네가 미리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해봤다는 것, 도전해봤다는 건 너무 멋진 일이야. 시도해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고 끝날 테니까."
- 김선연, 시골 육아, 185~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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