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27. 00:08ㆍ아빠랑
그러니까 이 소설은 ㅡ 옮긴이 김춘미에 따르면, "어떻게든 사회에 융화하고자 애쓰고 순수한 것, 더럽혀지지 않은 것에 꿈을 의탁하고 인간에 대한 구애를 시도하던 주인공이 결국 모든 것에 배반당하고 인간 실격자가 되어가는 패배의 기록"인 것이다.
표지 그림, 에곤 실레의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은 어쩜 이렇게 딱일까!
편집자는 분명 다자이 오사무의 이미지와 이 그림이 꼭 닮았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작가의 생김새도 비슷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소설과 그림을 서로 마주하게 한 점 역시 탁월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나는 그 사나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
석 장의 사진 묘사를 세 가지 수기에 비추어 보면 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인상적인 구절들.
그야말로 깃털처럼 가벼운, 그냥 하얀 종이 한 장처럼 그렇게 웃고 있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겉멋이 잔뜩 들었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경박하다고 하기도 그렇다. 교태를 부리고 있다고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멋쟁이라고 하는 것도 물론 부적합하다. 게다가 자세히 뜯어보면 여자 같은 미모를 가진 이 학생한테서도 역시 어딘지 악몽 비슷한 섬뜩한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이상한 미남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
- 10~11쪽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 13쪽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 16쪽
하긴 인간이란 전부 다 그런 거고 또 그러면 만점인 게 아닐까. 모르겠다... 밤에는 푹 자고 아침에는 상쾌할까? 어떤 꿈을 꿀까? 길을 걸으면서 무얼 생각할까? 돈? 설마 그것만은 아니겠지. 인간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돈 때문에 산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 17쪽
서로 속이면서, 게다가 이상하게도 전혀 상처를 입지도 않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는 충만한 것으로 느껴집니다.
- 27쪽
그는 저와 형태는 달랐지만 역시 인간의 삶에서 완전히 유리되어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동류였습니다.
- 45쪽
책장을 덮고 나서, 이와 비슷한 결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고 느꼈는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었다. 캐릭터가 닮았던가, 상황이 닮았던가, 유사한 사건이 있었던가, 아니 분명하진 않지만 「인간 실격」이 좀 더 내면 깊숙한 곳을 탐색하며 보다 더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인상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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