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정상 범주에서 비켜난 존재의 무게

2021. 8. 2. 23:47아빠랑

정상 범주에서 비켜난 아이의 존재가 한 가정을 어떻게 해체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정상가족이 받아들이기에 낯설고 이질적인 ㅡ 다섯째 아이, 벤은 전통적이고도 이상적인 가정을 단숨에 갉아 먹는다.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또 포기하지 않는 엄마와 가족 간의 갈등, 인간성의 상실 등 그들 일상의 변화는 속도감 있게 읽힌다. 

 

 

작년부터 경계선지능아동, 느린학습자를 위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학술적 서적 외에 참고가 될 만한 문헌을 찾다가 도리스 레싱에 닿았다.

 

벤이 가장 의지했던 사람들, 존 무리와 데릭 무리. 어쩌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바로 그들 무리 사이에 있지는 않을까. 그보다는 더 나은, 사회적인 차원에서.

 

 

소설의 첫 문장.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만난 것은 직장 파티에서였다. 두 사람 다 특별히 가고 싶던 파티는 아니었지만, 만나자마자 둘은 이야말로 그들이 기다리던 일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았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 문장들.

 

진정제를 복용하여 원수를 ㅡ 그녀는 자신 안에 있는 이 야만적인 것에 대해 이제 그렇게 생각했다 ㅡ 한 시간 가량 조용하게 만들면 그녀는 그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잠에 취해 정신없이 자다가 그것이 움직이고 당기면서 깨어나 자신을 아프게 하면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뛰쳐나왔다.

- 56쪽

 

약은 별로 효과가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약이 자신은 드냥 두고 아기에게, 살아남으려고 투쟁하고 있는 존재인 태아에게만 도달했으면 하고 원했다. 그런 시간 동안 그것은 조용했다. 아니, 그것이 깨어난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래서 싸움을 시작하려 하면, 그녀는 다시 한번 약을 먹었다.

- 58쪽

 

이 애는 예쁜 아기가 아니었다. 전혀 아기같이 생기지도 않았다. 누워 있는 동안 마치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처럼 두툼한 어깨에다 구부정한 모습이었다. 아기의 이마는 눈썹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경사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굵고 노르스름했으며, 가마 두 개에서부터 삼각형 또는 쐐기 모양으로 이마까지 내려오는 이상한 모양으로 나 있었다. 옆과 뒤쪽 머리카락은 아래쪽으로 자라고 있는데 앞쪽 머리카락은 이마 쪽으로 누워 있었다. 손은 두툼했고 손바닥에는 근육이 보였다. 아기는 눈을 뜨고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분명히 자신을 해치려고 노력했던 이 존재와 눈길을 교환하는 순간을 기다렸지만 그 눈은 알아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가슴은 그 애에 대한 동점심으로 조여들었다. 불쌍한 작은 것. 엄마가 너를 그렇게 싫어했다니..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불안스럽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그녀는 들었다. 「이 아이는 도깨비나 요괴나 뭐 그런 것 같아요」 그러고서는 미안한 듯 아기를 껴안았다. 그러나 그 애는 뻣뻣하고 무거웠다.

- 67쪽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벤은 어때?」라고 묻고 「아, 그 앤 괜찮아」라는 답을 듣고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82쪽

 

저녁때 그 애들은 너무나 명랑했고 킥킥대며 병적으로 흥분했다. 하지만 조용해진 순간 제인이 날카롭게 물었다. 「우리들도 보내실 거에요?」

- 104쪽

 

그 애가 먹는 동안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내 말을 들어봐, 벤. 들어야만 해. 네가 얌전하게 굴면 모든 일이 다 좋아질 거야. 올바르게 먹어야 해. 요강을 사용하든지 변기가 있는 데로 가야 해. 그리고 소리치거나 싸워서는 안 돼」 그 애가 자기 말을 듣는지 그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반복했다. 그녀는 계속 반복했다.

- 120쪽

 

벤이 학교에 다닌 지 일년이 되었다. 이 말은 그들 모두 벤이 그저 <다루기 어려운> 아이일 뿐, 그렇게 많이 잘못된 것이 없는 척하면서 그런 식으로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 애는 배우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기는 많은 애들이 배우는 것 없이 그저 시간 맞춰 학교에 보내지는 일이 허다했지만.

- 144쪽

 

둘 다 모르는 사이에 폴이 벤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할까?

그녀는 둘에게 이야기를 읽어주고 나서 폴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하라고 부탁했다. 그러고선 벤이 폴을 그대로 따라했다. 하지만 그 애는 몇 분 내로 그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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