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年歲歲 연년세세

2021. 9. 1. 23:59아빠랑

삼님, 세번째 낳은 자식이라나. 우리 엄마의 처음 이름이다. 두음법칙에 따라 '삼임'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님'자가 과연 한자인지, 한글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그 이름을 싫어했다. 어려서는 그 이유를 몰랐다. 엄마의 형제는 어렸을 때 내가 기억했는 것과 달랐다. 이복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자식들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2005년 대법원 판결 이후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개명을 신청했다. 

 

 

우리 엄마들, '순자'씨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황정은 작가의 연년세세에서 골라낸 문장들.

 

한영진은 한세진을 데리고 직원 식당으로 내려갔다. 백화점 근처에 더 좋은 식당이 몇군데 있었지만 한영진은 그런 곳으로 한세진을 데려가지 않았고 한세진도 굳이 바깥으로 나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게 룰이었다. 일터로 가장을 보러 오는 사람은 그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일하고 먹고 마시며 돈을 버는지를 봐야했다. 그렇게 버는 돈으로 그들이 먹고살았고, 살고 있으니까. 한영진은 그렇게 배웠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시장에서 부모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그걸 배웠다.
- 59쪽

 

한영진은 갓난아기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진 뒤에야 아이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아이를 유심히 보고 싶은 마음, 다음 표정과 다음 행동을 신기하고 궁금하게 여기는 마음, 찡그린 얼굴을 가엾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 관대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 인내심... 모든 게 그 간격 이후에야 왔다. 한영진의 모성은, 그걸 부르는 더 적절한 이름이 필요하다고 언젠가 한영진은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타고난 것이 아니고 그 간격과 관계에서 학습되고 형성되었다. 그건 만들어졌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한영진은 둘째를 낳을 수 있었고 첫번째보다는 여유 있게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이들을 지금은 좋아했다. 이순일이 그걸 가능하게 했다는 것을 한영진은 알고 있었다. 이순일의 노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 75쪽

 

이순일을 눈더미에서 건진 건 어머니였다. 그랬을 거라고 이순일은 믿었다. 왜 다른 사람이겠는가. 아이를 왜 던지느냐고, 어머니가 누군가를 나무라듯 말했다. 밤에 마루에서 뛰며 노니까, 하고 누군가가 답했다. 마루 끝에 불빛을 등지고 선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을 거라고 이순일은 믿었다. 왜 다른 사람이겠는가.
- 87~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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