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0. 19:20ㆍ아빠랑
그러니까..
저녁 7시가 되기 전에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토요일 밤 10시 45분발 인천행 에어프레미아 비행기였다.
태국으로 떠나올 때 지연된 이력이 세 번이나 있었기 때문에, 제 시각에 이륙한 것이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아 영화를 틀었다.
그런데 웬걸, 가다말고 회항을 했다.
비행정보를 보니 이미 주변을 선회하고 있었다.
기내가 술렁였다.
왜 회항을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도 없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멘트만 읊었다.
당초 양해해줄 생각이 없었으므로, 승객들은 그 멘트가 불편했다.
매뉴얼에 따라, 죄송하다는 말은 못한다는 설명은 사람들의 화를 돋구었다.
한 시간쯤 흐르자 다시 이륙할 수 있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아까 보던 영화는 이미 끝났다.
자정이 넘었으므로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기장이 방송을 켰다. 큰 한숨을 내쉬며 죄송하다고 했다. 어떤 문제가 있어 도착지에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분은 순간 큰 숨을 들이키며 두 손 모아 눈을 감고 기도를 했다.
화면을 켰다.
에걔? 얼마 가지도 않고 또 선회하고 있었네?
두 번째 회항으로 공항에 착륙할 때에는 동이 틀 무렵이었다. 날개 끝으로 검은 연기가 흩뿌려지고 있었다.
기체가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항공유를 어느 정도 소진해야만 한다고, 파일럿 경험이 있는 승객이 말했다. 선회를 하고도 남은 기름은 날개로 내보낸다고 들었다.
어쨌든 기체의 결함으로 도저히 한국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니, 그리하여 다시 돌아가는 비행기에 생명을 맡긴 입장이라 상당히 긴장되었다.
기체가 착지한 뒤로 또 대기.
일단 이 비행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풍경.
터미널 안에서 한참을 갇혀 있다가 나왔다.
이 비행기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대항항공에서 오는 비행기로 부품을 실어오기로 했단다. 고치면 오후 4시쯤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알려왔다. 아마도 8시 쯤에는 다시 이륙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니면 대체 항공편을 예약하라고 한다. 추가 비용은 항공사에서 부담한다고 했다. 같은 클래스면 실부담액은 없다고 덧붙였다.
인근 호텔을 알아봐 준다며 또 대기. 300여 승객들의 발이 꼼짝없이 묶였다.
항공사에서는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이름을 한명씩 호명하면서 승객의 여권을 가져가고 디파짓 카드라고 적힌 쪽지 하나를 줬다.
일행들은 술렁였다. 여행사를 통해 티케팅을 했는데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대체항공편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장 이른 대한항공편은 1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아까 봤던 티켓 값이 실시간으로 두 배 가까이 오르고 있었다.
항공사에서 정말 보상을 다 해주나? 여행자 보험에서는 어디까지 보상받을 수 있나?
호텔로 가는 길은 상당히 멀게 느껴졌다. 새삼, 수완나품 공항 정말 크구나.
대체 항공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이력을 조회해보자.
보잉 787-9, 고유번호는 8702.
무료 조회는 일주일만 가능하다. 4월 1일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도착지가 서울이다?
그 비행기가 우리가 귀국하기로 한 5일 새벽부터 서울에서 도쿄를 왕복하고 우리를 데리러 방콕으로 왔다.
그리고 출발지 방콕, 도착지 방콕.
그 사이 일행들은 항공사를 믿고 기다려 일찍 복귀하자는 쪽과 안전상의 이유로 그 항공사는 이용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호텔 식사권이 중식까지 제공되었으니 저녁에는 비행기를 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며, 이게 귀국하는 가장 빠른 일정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는 이 비행기를 고쳐 다시 띄우는 건 오늘 내로 불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비행 이력을 본 뒤 더욱 확신했다. 한국에서 부품을 빨리 가져와 고치더라도 안전한지 검사하는 절차가 있을 것이다. 고치면 비어있는 항공 플랫폼을 할당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 비행기를 타는 건 내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호텔에서 대체 항공편 예약에 대한 눈치보기와 셔틀버스 예약을 위해 긴장했던 시간들은 지나고보면 사소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되어 다시 공항에 가 내 여권을 다시 돌려받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화를 내며 소리치는 사람, 일행과 동떨어져 불안감에 주저앉아 의료진 도움을 받는 사람,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거나 티케팅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을 돕는 사람.. 호텔에서 대처방법을 모색하던 사람들은 공항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해야만 하는 절박함에 놓였다.
여권을 돌려받고서 보딩패스를 받았을 때에는 서로서로 박수를 치며 응원하고 격려했다.
타이항공을 혼자 탔다.
출국장에 들어가서도 에피소드 있었지.
나는 이미 출국한 사람.
입국 기록이 없다.
출국심사대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Failed. 그래도 당황하지 않는다.
Immigration에서 또 대기.
항공사 직원이 와서 또 어디로 데려가더니 그들끼리 어찌저찌 하더니 겨우 발이 풀렸다.
결론. 에어프레미아는 아니다. 여행자보험은 꼭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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